강원도 원주 지역의 기독교의 처음 시작은 1901년 이덕수 씨가 지게에 성경책을 지고 첩첩산중 오지였던 강원지역을 순회하면서 시작한 전도의 열매로 원주 지역 (당시는 원주 읍) 에서도 그리스도인들이 생겨 나게 되었습니다.

원주는 처음엔 남 감리교회 선교지역으로 분활 되었던 것이 나중에는북 장로교회로 이관되게 되었고 1909년엔 다시 감리교회로 환원되는 선교구역 분활을 거치게 됩니다.이러한 과정을 겪으며 신앙을 지켜가는 중에 장로교회를 세웠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던 22명의 장로교회 창립 구성원이된 신앙의 가족들이 1928년 부터는 이신학씨의 인도로 따로 집회를 가지며 31평 대지의 6칸집의 아담한 예배당을 짓고 원주 지역에 뿌리를 내리기 위한 태동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교역자가 부재 중이던 관계로 농촌 교인들이 교역자가 있는 감리교회로 출석 하기도 했으나 해방후 장로교 설립을 선언하고, 1946년 격변기 속에서 비로서 장로 교회로 태동 

합니다.

 

나는 내 고향 원주에 세워진 원주 제일 장로교회에서 태어나 나의 삶의 터전이었던 유년기를 보냈습니다. 눈꽃 바람 휘날리는 성탄전야에는 변변한 오바조차 걸치지 못했지만 밤참을 먹고나면 새벽송을 돌기위해 편성된 조를 따라 기쁜 마음으로 천지가 하얗게 눈 덮힌 순백의 골목길을 지나고 때때로 작은 마을에 있는 외딴집을 가려면 꼬부랑 산길을 뽀드득 뽀드득 소리를 내며 걸을 때 멀리서 들려오는 멍멍이 소리는 우리의 다정한 친구가 되어 주었습니다.

 

교우댁에 도착해서 우리가 부르던 세계적인 성탄 찬송인 고요한 밤 거룩한 밤” (Silent night holy night)은 고요하게 잠자고 있는 세상에 아름다운 가락으로 울려 펴지고 교우님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불을 밝히며  아멘으로 화답해 주셨습니다. 뜨끈한 떡국 한 그릇씩 대접을 받으면 추위는 눈 녹듯 녹아 내리고 새힘을 얻으며 호호 하하 어느새 도착한 교우님들 집 앞에서 아래의 성탄송들을 섞어가며 불렀습니다.

 

저들 밖에 한 밤중에 양 틈에 자던 목자들 (The first Noel, the angel did say)

 

그 맑고 환한 밤 중에 뭇 천사 내려와 (It came upon the midnight clear)

 

귀중한 보배합을 주 앞에 드리고 (Bring our all)

 

그 어리신 예수 눌 자리 없어 (Away in a manger)

 

동방박사 세 사람 귀한 예물 가지고 (We three kings of Orient are)

 

기쁘다 구주 오셨네 (Joy to the world)

 

영광 나라 천사들아 땅끝까지 날면서 (Angels, from the realms of glory)

 

오 베들레헴 작은 골 너 잠들 었느냐 (O little town of Bethlehem)

 

참 반가운 신도여 다 이리 와서 (O come, all ye faithful)

 

우리 구주 나신 날 목자 영광 볼 때에 (On the day of Jesus’ birth)

 

천사들의 노래가 하늘에서 들리니 (Angels we have heard on high)

 

천사 찬송하기를 거룩하신 구주께 (Hark! The herald angels sing)

 

옛적 임금 다윗성에 (Once in a royal David’s city)

 

설레이는 성탄절 밤 천지에 가득한 기쁨과 감사의 보배합을 열어 부르던 새벽송 중에서 가장 애창되던 곡은 역시 기쁘다 구주 오셨네였습니다. 기뻐하심을 입고 평화를 맛 본 감격으로 불렀던 기쁘다 구주 오셨네가 생솔방울과 생솔가지 연기처럼 날아가버린 성탄송을 부르던 그리움의 추억이 반 세기가 흘러간 지금에서야 아이삭 왓츠(Isaac Watts,1674-1748)가 작사한 시 였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영국 찬송가의 아버지로 칭송 받는 그는 영국 사우스앰턴 (Southampton)에서 태어났습니다. 150cm 높이의 작은 였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천재적인 명철과 총명함을 주셔서 다섯 살에 라틴어를, 아홉 살에 그리스어를, 살에 프랑스어를, 살에는 히브리어를 배워 5 국어에 통달 했다고 합니다.하나님이 주신 영감으로 어쩔수 없이 타고난 시인 이었던 그는 말투조차도 운율적이어서 아버지로부터 꾸지람을 들을 때에도 운율에 맞추어 대답을 했었으며 7세 때 그의 이름 "Isaac Watts"라는 글자를 가지고 10행시를 짓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그는 목회자로서도 매우 뛰어나 24 살이 되던 1698 마크레인 교회(Mark Lane Independent Chapel)  부목사 (Assistant Pastor) 로 9 년을 섬기고 33 살이 되던 1698 부터는 담임 목사 (Senior Pastor) 50  여생을 마치기까지 그 교회 교인들은 그가 중병으로 목회활동을 감당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부 목사 한 분을 초빙하여 그가 하던일의 대부분을 감당하게 하며그의 건강이 회복 되도록 기다리기를 무려 22년을 기다림으로 이 교회는 그에게 평생의 유일한 목회지가 되었습니다.독신으로 지낸 그는 74 년이라는 인생 여정 동안 750 여편의 주옥 같은 시를 썼으며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21 세기 찬송가에는 신앙의 영웅 이었던 그의 맥박을 느끼게 하는 12 곡이 채택 되어 수록 되어 있습니다.

 

 

기쁘다 구주 오셨네 외에도 11 곡이 채택되어 ‘21 세기 찬송가 아래와 같이 수록 되어 있습니다.

 

웬말인가 위하여 (Alas, did my Saviour bleed)

 

달려 죽은 십자가 (When I survey the wondrous cross)

 

큰 영광 중에 계신 주 (Begin, my tongue, some heavenly theme)

 

이 날은 주님 정하신 (This is the day the Lord hath made)

 

예부터 도움 되시고 (O God, our help in ages past)

 

햇빛을 받는 곳마다 (Jesus, shall reign where’er the sun)

 

만왕의 왕 내 주께서 (Alas! And did my Savior bleed?)

 

목소리 높여서 (Now to the king of heav’n)

 

주 사랑 하는 자 다 찬송 할 때에 (Come, we that love the Lord)

 

나는 예수 따라가는 (Am I the soldier of the cross)

 

십자가 군병 되어서 (Am I the soldier of the cross)

 

위의 찬송가 가사의 첫 줄들이 보여주듯이 그는 당대에 두루 쓰이던 묵은 관습의 다윗의 시편가에 획을 긋고 하나님의 자비를 통한, 우리를 위해 대신 못 박혀 피 흘리심으로 죄 용서함 

받는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을 담은 속속들이 복음정신의 찬송가로 변경하는 시작을 시도하던 첫 걸음으로 당시의 신학자들의 반대에도 자신의 원칙을 굽히지 않았다고 합니다.

 

병약했던 그의 삶은 오히려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이루는 이야기를 간직한 삶이었음이 틀림 없습니다.

놀랍게도 저의 어린 시절부터 머리 속에 자리잡은 것은 저의 믿음의 조상들이 흐르는 눈물을 닦아가며 "웬말인가 날 위하여 주 돌아가셨나!"를 찬양하며 무릎으로 신앙을 다져가시던 모습 이었습니다.이젠 먼 하늘로 귀향하신 그들의 빈 자리에 앉아 저 역시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웬말인가 날 위하여 주 돌아가셨나!"를 찬양하며 그 자리를 지켜가리라 다짐해 봅니다.

 

 

 

참고:  Sings my soul by Robert J. Morgan 31,33

 

      (1946-2006) 원주 제일 장로교회 60년사 142-146 쪽

 

      21세기 찬송가 해설, 오소운 목사 지음, 242-2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