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5일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우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요한복음 2:9~10)
묵 상
그리스도인은 이미 “사망에서 생명으로”(요 5:24)의 체험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모두 썩을 생명을 가지고 태어나 썩지 않을 생명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떤가요? 우리는 지금 ‘생명’으로 충만한 삶을 살고 있습니까? 우리의 말과 행실 가운데 ‘생명’이 넘쳐흐르고 있습니까? 혹, 우리도 저 세상의 사람들처럼, 시대의 풍조를 따라, 헛헛한 가슴을 안고 흔들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파스칼은 『팡세』에서 인간의 생을 두고, 솔로몬과 욥을 상기시켰습니다.
“솔로몬과 욥은 인간의 비참을 가장 잘 알았고, 가장 잘 이야기했다. 하나는 가장 행복했던 사람이었고, 다른 하나는 가장 불행했던 사람이었다. 경험을 통하여 한 사람은 쾌락이 허무함을 알았고, 다른 한 사람은 불행이 현실임을 알았다.”(블레즈 파스칼, 『팡세』중에서)
그는 인간의 조건으로 ‘변덕, 권태, 불안’이라 하였습니다. 그런데 파스칼 자신이 바로 이 조건을 뛰어넘어, 인간의 ‘비참함’ 속에서 ‘위대함’을 발견했다고 선언합니다. 그는 그것이 ‘복음서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라고 했습니다. 복음서의 예수 그리스도! 갈릴리 가나의 혼인잔치도 그 하나가 아니었을까요?
‘가나’는 히브리어 ‘갈대의 땅’이란 뜻이며, 갈릴리는 ‘멸시 받고 천대받는 땅’의 상징이었습니다. 한 글자도 쉬이 지나갈 수 없는 성경인지라, 먼저 이 지명에 눈을 돌립니다. 솔로몬은 강국의 왕이었지만, 그 마음은 늘 갈대처럼 흔들렸습니다. 욥은 동방에서 제일가는 부자였지만 일순간 가장 천하고, 낮은 사람으로 전락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인생이 ‘아침 안개’와 같다 하신 성경말씀 그 자체였습니다. 어떤 삶인들 만족이 있으며, 어떤 고통인들 다함이 있겠습니까? 이 땅에서의 삶이란 ‘허무’라는 말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채워지지 않는 항아리 같습니다. 무엇을 꿈꾸고 소망하며 여기까지 달려왔습니까? 바로 이 질문의 자리에서 우리는 ‘가나 혼인잔치’를 다시 읽어야 하겠습니다.
포도주가 떨어졌을 때 모두 ‘잔치가 끝났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사건은 혼인잔치의 주인공인 신랑과 신부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연회장의 문제만도 아닙니다. 잔치에 참석함 모든 사람이 문제입니다. 이대로 기쁨의 잔치가 끝나버린다면…… 그때 주님께서 명하십니다.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요 2:7). 바닥을 드러내 버린 돌항아리는 우리입니다. 솔로몬도 돌항아리이고, 욥도 돌항아리입니다. 바닥을 드러내 버리고 나니 모두 끝난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물을 채우자 더 좋은 포도주가 되어있더란 말입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아니야! 잔치는 끝나지 않았어.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야!” 연회장은 더 맛있는 포도주를 어디서 가져왔느냐고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사는 이 땅이 가나요, 갈릴리가 아닙니까? 우리가 바로 ‘돌항아리’가 아닙니까? 그런데 바로 여기서, 기쁨의 잔치가 다시 시작됩니다. 주님께서 내 삶 가운데 오셔야 합니다. 말씀으로 돌항아리를 채워야 합니다. 그래야 다시 볼 수 있고, 누릴 수 있고, 맛볼 수 있습니다. ‘새로운 기쁨’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사순절은 성회 수요일부터 시작하여 주일을 제외한 40일 입니다.
지난 2월 17일 주일은 사순절 첫번째 주일입니다.
주일은 사순절 묵상 자료를 제공하지 않습니다.
주일은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묵상 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