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저와 함께 근무하는 직원 중에 엘리라는 외국인이 한 사람 있습니다. 요즘은 외국인도 우리나라와 본국의 신원조회를 거치면 정부기관에서 일할 수 있어서 많지는 않지만 동포를 비롯한 외국 국적 직원이 더러 있습니다. 근무한지 6 개월 정도 된 엘리는 유태계 미국인인데 우리말도 대단히 유창하게 구사하는 덕에 영문 인터넷 홈페이지 관리와 한글 문서의 영문 번역 일을 맡아 하고 있습니다. 직원들 중에 가장 먼저 출근하고 가장 늦게 퇴근할 정도로 일을 열심히 하고 성실해서 주위로 부터 좋은 평을 듣고 있습니다.


엘리는 신실한 유대교인이라서 특히 먹는 것을 매우 가립니다. 구약의 율법대로 돼지고기나 오징어와 새우에 손대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쇠고기를 비롯한 어떤 육류도 율법에 따라 조리되지 않은 것은 먹지 않습니다. 그래서 엘리와 함께 식사를 하려면 식당 고르는 일이 여간 힘들지 않습니다. 단체 회식이 있어 갈빗집엘 가도 엘리는 고기 냄새나 맡으면서 공깃밥에 김치만 먹는 처지입니다. 그럴 때 마다 함께 간 우리도 안타깝고 본인도 매우 미안해하지요. 다른 직원들이 고기 굽는 냄새를 맡으면 먹고 싶은 마음이 참기 어렵지 않으냐고 묻기라도 하면 엘리는 전혀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의연한 모습으로 대답합니다. “저는 율법에 맞춰 음식 먹는 것이 즐겁습니다.”


또 엘리는 미국에서 태어나 대학까지 다녔지만, 자원해서 이스라엘에서 군복무도 마쳤습니다. 제가,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럴싸한 이유가 조금이라도 있으면 어떻게 해서든 군대를 안 가려 하는데, 너는 굳이 가지 않아도 되는, 그것도 위험한 이스라엘 군대를, 무엇 때문에 자원해서까지 갔느냐?”라고 물은 적이 있습니다. 엘리의 대답은 그야말로 교과서에서나 나오는 모범답이었지만 진심이 배어 있었습니다. “우리 이스라엘은 매우 작은 나라인데 국민이 지키지 않으면 누가 지켜줍니까?”라는 것이었습니다. 


구약 성경을 공유하는 저와 엘리는 이스라엘 역사나 성경에 대해 대화를 나누곤 합니다. 엘리는 한국 사람이 자기 나라 역사와 성경을 알고 있는 것을 신기하게 여기고, 저는 오리지널 유대교 신자와 성경에 관해 얘기하는 것을 재미있어 합니다. 그리고 가끔씩 엘리를 보면서 바벨론에서 포로생활 하면서도 음식을 절제하고 예루살렘을 향해 엎드려 기도하던 다니엘과 세 친구를 떠올립니다. 또 한편으로는 나와 이웃을 위해 고치려고 다짐한 작은 것들을 실천하지 못하는 내 모습을 보고 부끄러움도 느낍니다.


“너희의 의가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의 의보다 낫지 않으면, 너희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마 5:20)  


복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았지만 생활 속에서 절제와 경건을 실천함으로 의롭다 인정해 주심에 합당한 선한 열매를 맺어야함을 새삼 깨닫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