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그래왔듯이 한국사회는 요즘도 대단히 소란스럽다. 나라는 좁은데 인구가 많아서인지 미국이라면 지방 신문에 잠간 나오고 말 법한 작은 일이나 스캔들도 온 나라가 들썩일 정도로 큰 반향을 일으키곤 한다.

인터넷과 한인 언론매체 덕에 미국에 앉아서도 한국사회 돌아가는 소식을 실시간으로 접하고 있어서 신정아라는 여인의 책 ‘4001’이 현재 화제가 되고 있다는 것을 교민들은 잘 알고 있지 싶다. 그녀는 서울의 한 대학 교수로 있던 몇 년 전, 가짜 예일대 박사학위가 탄로나서 감옥살이까지 했다. 그 와중에 고위관료와의 불륜도 함께 드러남으로써 ‘신정아 스캔들’을 일으키고 세간에 충격과 흥밋거리를 제공했던 장본인이다. 책 제목 ‘4001’은 감옥생활 중 그와 함께 했던 죄수번호다. 그는 특급호텔에서 출판기자회견을 열어 세상으로부터 손가락질 받을 때 하지 못했던 얘기들을 하고 4001과 영원히 헤어지기 위해 책을 낸다고 밝혔다. 요즘 한국 출판업계에서는 책을 발간해서 1000부 이상 팔리면 나쁘지 않은 결과이고 3000부면 소위 대박을 치는 것이라 한다. 그런데 ‘4001’은 아예 초판을 5만부 찍었고 발매 첫날 2만부가 팔렸으며, 곧 매진이 될 것으로 보여 추가 인쇄를 하는 중이라고 한다.

책이 나온 지 1주일 쯤 지나고 나니 책 내용 중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것들이 흘러나오고 책에 대한 평가가 들려온다. 그리고 그로 인해 책은 날개를 달고 더 많이 팔려나간다. 본인이 만났던 유명인사들의 실명을 써가며 도덕성 제로의 남자나 성추행범으로 만들어 완전히 박살내기도 하고, 불륜이긴 했으나 그토록 사랑했다는 남자를 거의 조롱감이 되도록 몰아붙이기도 한단다. 한 마디로 세인이 흥미를 느낄만한 소재를 가지고 자신이 만났던 상류층 인사들과의 일들을 ‘고백’함으로써 돈 벌이를 잘 하고 있는 것이다. 그 대상이 되고 있는 남자들은 사실일 경우 둘 만의 사이에서 있었던 일이 더 까발려지는 것이 부담이 되어 “대꾸할 가치도 없다...” 정도 밖에는 반응을 못하고 있고, 사실이 아니라 하더라도 신정아와 같은 수준으로 내려앉게 되는 것이 두려워 결백을 검증하자고 쉽사리 나설 수도 없을 것이다. 그녀는 아예 기자회견 자리에 변호사를 대동하고 나와서 “변호사의 법률적 검토”를 거쳐 책을 펴냈다고 여러 번 강조했다. 가짜 예일대학 박사학위 건에 대해서도 자기 역시 브로커에게 속은 피해자라는 설명으로 반성의 진정성을 느끼지 못하게 한다는 평이다.  출판이나 정신과 계통의 전문가들은 저자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새 출발을 한다는 미명 하에 변명을 늘어놓고 지저분한 폭로까지 곁들여 돈을 벌겠다는 의도로 책을 썼고, 우리사회는 그 의도에 적당히 잘 말려들어 가고 있는 중이라고 지적한다.

아직 책으로 출간되지는 않았지만 큰 돈을 들여 신문의 전면광고로 수십 회에 걸쳐 게재한 ‘너희가 가나안을 아는가?’라는 글은 가나안의 30년 역사가 한 개인의 청렴과 근면으로 쌓아 올린 자랑스런 금자탑이었는데 이를 시기한 악덕 노회 지도자들과 욕심에 눈먼 교단 그리고 이들에게 이용당하는 어리석은 교인들에 의해 억울하게 피해를 당했다는 얘기다. 교회 분규의 발단이 되었던 재정, 은퇴와 원로목사 청원, 후임목사 청빙, 아들 목사 영입 등에 대해서 본인은 완벽하게 정당한 반면 흑심 가득한 교인들의 어거지 생떼로 생긴 의혹이라고 한다. 법률적 검토를 거친 듯, 필요하다 싶을 땐 과감하게 실명을 거론하기도 한다. 30년의 역사는 알지 못하지만 지난 5년의 역사는 사진처럼 기억하고 있는 나로서는 분규에 관한 내용을 보고 실소를 금할 수가 없다.

여러 번 언급되는 것들 중 자신이 세례 주고 결혼식 주례 서주고 자식 낳았을 때 유아세례 주고 교회 직분까지 준 교인이 자신을 대적하는 것에 대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열을 올리는 부분이 있다. 백보를 양보해서 그런 배은망덕한 교인이 있다고 치자. 어떻게 가르치고 키웠기에 멀쩡하고 죄 없는 목사를 대적하는 가에 대한 고민은 전혀 안 해 봤을까? 죽으라고 하면 거의 죽는 시늉까지 하던 교인들 중 절반이 등을 돌리게 된 이유는 한 번 생각 안 해 봤을까?

'4001'의 내용에 대해서는 궁금하기는 하나 어떤 내용이 되었건 마음 아플 일은 없다. 그러나 ‘너희가 가나안을 아는가?’를 읽으면서는 마음이 많이 아팠다. 변명보다는 반성이 남에 대한 비난보다는 스스로를 돌아보는 모습이 어렴풋하게라도 보이기를 바랐기 때문이고, 이는 여전히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서인지 모르겠다.

나만 이런 마음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아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