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 간의 시카고 방문이 눈 깜짝할 새 지나갔습니다. 이렇게 빨리 시간이 지나간 것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방문이 즐겁고 좋았기 때문입니다. 오랫동안 떨어져 지내야 했던 식구들을 만나서 보내는 시간은 금쪽 같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만, 특별히 이번 방문은 또 다른 이유가 있어서 제게는 더 귀하고 즐거운 것이 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저는 인천행 비행기에 앉아 시카고에서 보고 느꼈던 것들을 돌이켜 생각하며 그 즐거움을 다시 한 번 되새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느낌을 사랑하는 언약장로교회 성도 여러분들과 글로써 나누고 싶은 마음이 들어, 즐거움이 식기 전에 기록하려고 불편한 자리에서 컴퓨터를 켰습니다.

우리는 지난 5년 동안 한 가지 일을 위해 매진하였고, 그 때문에 여러 가지를 잃기도 했습니다. 이제 무엇을 이루었고 무엇을 잃었는지 셈해야 할 때라고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싸움은 끝났기 때문입니다. 싸움이 끝났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 안에서 내려지는 판단은 모두 결론이 났다는 것이고, 공의를 세우려 했던 우리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음이 드러났습니다. 교회의 판단을 끝까지 거부하고 세상 법정 판사의 손가락 끝에 마지막 기대를 걸고 있는 이들이 있지만, 1월 26일의 판결은 이 싸움의 영적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우리모두는 잘 알고 있습니다. 오히려 재산권의 향방에 초조해 하는 저들의 모습이 측은하기까지 합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추구했던 한 가지는 교회를 바로 세우는 것이었고, 잃거나 훼손되어 버린 것들은 영성과 믿음, 세상으로부터의 신뢰, 소망 속의 여유를 비롯해 그리스도인으로서 가졌던 여러 미덕과 주 안에서 사랑으로 교제를 나누던 형제자매들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사랑하는 우리 자녀들의 믿음도 좋지 않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부모들은 영어 예배를 맡은 목사와 전도사를 아무 생각 없이 비난했지만, 우리 아이들은 여전히 그 목사와 전도사가 설교하는 예배에 참석하면서 신앙이란 말과 행동이 다른 것이라고 마음에 새겨가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따져 본다면 얻은 것은 우리가 이겼다는 뿌듯함 정도인데 반해 잃은 것은 너무나도 크고 많은 것 같습니다. 어쩌면 겉으로 이기고 속은 진 싸움을 한 것일 수도 있고, 앞으로 남고 뒤로 밑진 장사를 한 것일 수도 있어 보입니다. 하지만 이번 방문에서 저는 우리의 싸움은 겉으로도 이기고 속으로도 이긴 싸움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습니다. 지난해 말 새로 출발한 언약장로교회의 모습이 참 은혜롭고 좋았습니다. 새로이 세움 받은 장로님들의 의연하고 믿음직한 모습 또한 정말 좋았습니다. 그리고 누구나 예외 없이 얘기하듯 우리에게는 넘치도록 멋진 목사님이 강단을 지켜주시는 것이 교회의 새로운 소망을 느끼도록 해 주었고, 다른 무엇보다 활력과 자신감이 넘치는 성도님들의 얼굴을 보고 우리가 잃었다고 하는 그 모든 것들을 곧 되찾을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습니다. 제가 방문했던 시점이 꼭 연말연시라서 이런 새로운 각오와 소망이 돋보였던 것은 전혀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그 동안 겪었던 파괴는 새로운 창조를 위한 것이었고, 물러섰던 한 발짝은 두 걸음 나아가기 위함이었으며, 더 좋은 것을 얻기 위해 가졌던 것을 잃은 것이었음을 자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약함과 죄인됨을 잘 배려하셔서 나태해지거나 교만해지지 않도록 가능성은 허락하시되 모든 것을 완벽히 한꺼번에 주시지 않으심을 또한 느꼈습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섬기고 기도하도록 우리에게 숙제를 주심을 감사히 생각합니다. 우리가 그토록 원하던 아름다운 교회를 이루고 잃었던 것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꽤 쉽지 않은 숙제가 앞에 놓여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과거로부터 떠나 새로운 것을 이루어 나가되 믿음과 지혜를 잃지 말아야겠다는 것입니다. 부끄럽고 창피하지만 부인할 수 없이 가나안교회 30년 동안 우리는 한 사람의 리더가 시키는 것만 했고 이제 그 리더 없이 새로운 공동체로 출발하려고 보니 컨텐츠의 공백이 아주 큽니다. 과거의 색을 지워보려 하지만 마땅히 입힐 새로운 색을 찾지 못해 답습하기도 합니다. 과거의 것이라고 무조건 따르거나 부인할 것은 아니지만, 취사선택의 이유와 명분이 뚜렷하지 않으면 자신감이 떨어지고 혼란이 생기게 될 것입니다.

또 다른 숙제는 새로운 공동체를 어떻게 조화롭게 이끌어 갈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우리 밖의 사람들은 물론이고 우리조차 인정하는 것처럼 5년의 세월을 버텨 온 것을 보면 우리는 여간 모진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 언약장로교회는 신념과 끈기가 있는 이들만 남아서 새출발 하는 교회입니다. 가사모부터 시작해서 그 동안 우리는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 앞에서 분열이나 흐트러짐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결연함이 있어서 잘 버텨왔습니다. 모두가 잘 참았고 또 생각이 다른 이들에게 양보해서 오늘의 결과를 이루었습니다. 이 같은 결의와 각오가 과거의 적은 사라져도 새로운 적이 우리와 늘 대치하고 있다는 경각심과 함께 반드시 유지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귀하게 주신 기회요 세상 사람이 기대를 가지고 주시할 언약장로교회가 서로 다른 생각들을 지혜롭게 조정하지 못해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는 일은 결코 없어야겠습니다.

이 같은 어려운 숙제를 잘 감당하기 위해 부족하지만 작은 충언을 교회 앞에 드리고자 합니다. 제가 이렇게 하고자 함은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을 줄곧 가져온 상태에서 오랜만에 만나니 늘 교회와 함께 생활하는 여러분들이 혹 놓칠 수 있는 점이 제게는 생각날 수도 있고, 이를 말씀 드려 선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입니다. 저의 생각이 짧거나 잘못된 것이면 지적하여 주셔서 교회를 세워나가는데 보탬이 될 수 있기를 원합니다.

먼저 제가 느끼기에 우리 교회가 가장 시급히 필요로 하는 것은 좋은 교회가 가져야 할 교회다움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교회다움이란 여러 가지 말로 정의되고 표현될 수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복음의 감격으로 모인 하나님의 사람들이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기 위해 예배와 교제를 가지는 것입니다. 원하는 바는 아니었지만 지난 5년 간 우리는 나의 신앙보다는 다른 이의 잘못에 관심을 많이 가졌고, 주의 말씀보다는 교단의 규례서나 명령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말씀이 갈급해서 교회를 떠나는 이들을 보며 우리가 안타까워했던 이유는 곧 끝날 텐데 조금만 더 참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신앙 안에서 유연성을 갖는 것 역시 우리에게는 절실하다 싶습니다. 우리는 유연성을 키우기 보다 버리는 훈련을 오랫동안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규칙과 규례가 중요했고 그것을 벗어나는 것을 찾아내는 것이 우리의 임무처럼 보였습니다. 이렇게 몸에 벤 관습은 애써 노력하지 않으면 잘 안 지워지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특히 과거의 학습효과가 너무나도 강해서 앞으로는 교회가 잘못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며 당회는 목사님을 향해, 집사회는 당회를 향해, 그리고 일반 성도들은 교회 직분자들을 향해 지원보다는 감시의 눈초리를 세우려 한다면 우리교회는 교회다움을 가질 수 없을 것입니다. 과거 가나안교회는 한 쪽을 향한 일방의 섬김만 있었습니다. 장로는 담임목사에게 충성하겠다는 서약을 해야 임직 받을 수 있었고, 성도들은 목사님의 지시나 당회의 결정사항이라는 것에는 두 눈 감고 따랐습니다. 이런 까닭에 우리의 새로운 교회에서는 강한 반작용의 모습이 보일까 걱정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서로가 서로를 섬긴다면 아름답고도 은혜스런 교회가 될 것입니다. 지난 송구영신예배 후에 장내정리에 많은 이들이 힘을 모았지만 마지막까지 빗자루를 들고 청소하는 장로님들을 보고 신선한 감동과 함께 우리 교회의 새로운 가능성에 대단히 기쁜 마음이 들었습니다. 좋은 목사님, 훌륭한 장로님, 그리고 소망 넘치는 성도들이 감시와 견제가 아닌 섬김과 복종의 자세로 교회를 이루어 나간다는 생각에 저는 지금도 가슴이 벅차 오릅니다.

글을 시작할 때 예상은 했지만 쓰고 보니 대단히 긴 글이 되어버렸습니다. 우리가 바라던 아름답고 좋은 교회를 가질 수 있는 기회를 하나님께서 허락하셨다는 생각에 기대가 큽니다. 부디 우리 모두가 힘쓰고 조심해서 주께서 주신 기회를 놓치지 않고 아름다운 열매로 가꿔 나가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사랑하는 언약장로교회 성도님들, 모두 건강하시고 주 안에서 기도 가운데 뵙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