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14

 

종교인? 그리스도인?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드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로마서 2:13)

 

  

        유대인의 명절이 되어 예수인은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베데스다라고 하는 못 주변에 있는 행각에 방문하셨습니다. 거기서 38년 동안이나 가장 비참한 모습으로 고통을 당하는 병자를 긍휼이 보신 예수님은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말씀하고, 그 말씀을 들은 병자는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일어나 걸어갑니다. 그런데 그날은 안식일이었습니다.

 

때 마침, 병 나은 사람이 자기 자라를 들고 가는 것을 본 유대인들은 그를 질책합니다. 안식일에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입니다. 율법을 모독했다고 여긴 것입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옳지 않은 일을 행한 이가 예수님이라는 것을 곧 알게 됩니다. 이 일로 유대인들은 더욱 예수님을 박해하게 되었고 죽이고자 마음먹게 됩니다.

 

           이처럼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의 수난과 죽음으로 몰고 가는 가장 큰 명분은 신성모독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신성 모독의 중심에는 언제나 율법이 놓여 있음을 봅니다. 이 율법은 분명 믿음과 신앙생활의 핵심적 요소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유대인들은 이것을 진리와 생명의 본체를 대적하는 데 사용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유대인들을 향해 회칠한 무덤이라 탄식하십니다. 겉모양은 회칠한 것 같이 단장되어 있고 아름다워 보이나 그 속은 부패한 냄새가 진동하는 무덤과 같은 모양이라는 것입니다. 의로움과 사랑과 믿음 그리고 생명을 존중하는 율법의 바른 정신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결국, 율법을 잘 행한다고 자부했으나 율법의 바른 정신을 잃어버린 유대인의 신앙태도는 말씀이 육신이 되셔서 구세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데까지 이르게 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수없이 많은 예배에 참석하고 말씀을 듣습니다. 그러나 듣기만 잘하고 말씀의 바른 이해와 바른 순종이 없는 신앙인, 경건의 모양만 잘 갖춘 종교인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요? 우리가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고 바로 행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잘 펼쳐 나가고 있는 그리스도인인지, 그리고 경건의 모양과 경건의 능력을 겸비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인가를 이 사순절 절기에 다시 한 번 겸손히 되짚어 봤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