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31

 

부끄러움을 넘어 담대함으로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로마서 10:14)

 

   

           요즘 기독교인으로 우리 자신의 모습을 그려본다면 어떤 모습일까요? 뜻있는 기독교인이라면 결코 우리들의 자화상을 자랑스럽게 그리지 못할 것입니다. 그만큼 세상 속에서 교회는 부끄러운 일들로 그 수치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내가 기독교인이라는 것조차 드러내놓고 말하지 못한 채 세상과 어울려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는 설령 나 자신이 잘못하더라도 교회에 수치가 되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지 않겠다는 나름의 선택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일반 양심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사람과 비교한다면 그래도 양심적인 신앙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이것이 최선일가요?

 

           십자가에서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을 생각해 봅니다. 그 표면적인 모습만 바라본다면 처절한 실패입니다. 그리하여 제자들은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예수님은 다시 찾아오셨고, 성령의 능력을 주심으로 다시 일으켜 세워주셨습니다. 머리로만 알았던 하나님 나라의 현신을 다시금 가슴으로 뜨겁게 느꼈습니다. 그들은 다시 일어났고, 이제 더 이상 예수님의 죽음을 수치로 여기지 않고 담대하게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시다. 너희가 죽인 그 사람을 하나님이 다시 살리셨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하고 선포하였습니다. 이 담대한 외침에 많은 백성이 다시 주님께로 돌아왔고 초대 교회는 힘차게 성장해갔습니다. 제자들이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만 바라보며 절망했다면 오늘의 기독교는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제자들은 십자가의 죽음을 넘어 생명으로 부활하신 주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오늘은 사는 우리도 부끄러운 우리의 모습만 바라보고 절망하면 안 됩니다. 어둠 속에 빛으로 오고 계신 예수님, 그 예수님을 따라 고통의 현장 속에서 지금도 민중들과 함께 하면서 그 빛을 증거하는 많은 작은 예수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나도 그 작은 예수가 되어 그 길을 걸어가는 담대한 선포자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