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운전하는 차가 한강을 건너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매일 주님의교회로 가기 위해 건너던 강을, 이제는 가족과 함께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건너고 있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주님의 교회로 부터 자유를 얻은 것이다. 그와 동시에 주님의 교회 역시 허물 많은 이재철 로부터 자유를 얻었다. 그리스도 안에서 헤어짐의 참된 의미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아직 한 가지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다.
지난 6월 9일 마지막 당회를 마치고 내가 먼저 나간 뒤, 나의 스위스 사역기간 동안 한국에 있을 내 가족들을 위해 당회가 신수비를 계속 지급키로 결정했다는 사실을 퇴임 사흘 전인 18일에야 알게 되었다. 당회원들이 그토록 나를 위해 주고 있다는 생각에 새삼 가슴 벅찬 감동을 느꼇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나로서는 사양해야만 할 일 이었다. 그래서 퇴일 하루 전인 20일, 당회 재정위원장인 김소일 장로님에게 전화를 걸어 나의 사양의사와 왜 사양할 수밖에 없는지 등 이유를 소상하게 밝혔다. 김 장로님은 자신은 충분히 이해했지만, 그러나 자신이 전하는 말만 듣고서는 당회원들이 납득하겠느냐며, 나에게 편지를 써 달라고 말했다. 바로 그 편지 쓰는 일이 아직 남아 있었다. 김 장로님과 통화하던 20일은 토요일이었기에, 설교 준비로 그럴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나는 사흘 간의 휴식을 취한 뒤에 편지를 썼다. 그리고 그 편지를 발송함으로써 나의 퇴임은 명실공히 완결 되었다.
김소일 재정위원장님께 올립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문안 드립니다.
지난 목요일 당회 서기인 안사무엘 목사님이 정리한 8월 당회록을 통하여, 6월 당회 시 제가 퇴장한 다음, 저의 퇴임 후에도 제 가족들에게 계속 신수비를 지금할 것을 당회가 결의하였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부족한 종에게 끝까지 깊은 관심을 표명해 주신 당회원들의 사랑에 먼저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아울러 당회원들께 저의 입장을 밝혀 드림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물론 제가 스위스에 있는 동안 주님의교회가 제 가족의 생활비를 지급해 준다면 제 가족들은 더없이 편할 것입니다. 그러나 지난 10년 동안 우리 교회는 편한 삶보다는 바른 삶을 추구해 왔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임기를 제정하고 실천하면서, 주님의교회에는 소위 원로목사나 원로장로 제도를 아예 두지 않기로 한 것도 이 같은 연유에서일 것 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지 제가 개척목사였다는 이유만으로 퇴임 후 에도 계속하여 제 가족의 생활비를 지급 받는다면, 이것은 또 다른 의미에서 원로목사를 인정하는 것과 같은 결과가 될 것이기에 결코 바른 일일 수 없을 것입니다. 일단 목사는 퇴임하면, 봉직하던 교회와 모든 면에서 완전 단절되어야 시무하던교회에 덕이 된다는 소신에는 아직 변함이 없습니다.제가 스위스에 가있는 동안 주님의교회가 매달 제네바 한인교회를 돕기로 한 것도, 그것이 연약한 그 곳 교회에 대한 지원이 아니라 만일 저 자신이나 제 가족 개인에 대한 경제적 이었다면, 저로서는 마땅히 사양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저는 평소에 '믿음은 순종'이라고 증거해 왔습니다. 이제 주님께서는 저를 스위스로 부르셨습니다. 가족과 떨어져 홀로 가야 하는 상황 속으로 저를 인도 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저 자신은 물론이요 제 가족 또한 이 상황속에 기쁨으로 순종함이 순리 아니겠습니까? 제 가족들의 생계를 위하여 경제적 도움을 교회로부터 당연한 듯 받는다면, 이것이야말로 제 믿음을 저 스스로 버리는 짓이 아니겠습니까? 저희 가족들은 주님께서 주신 이 상황에 순종하며 적응하기 위하여, 그 동안 오래도록 저희 가족을 도와 주시던 파출부 아주머님과 7월 중에 헤어지기로 하는 등, 가정적으로 필요한 구조조정을 다마쳤기에, 저희 가족들은 이 주어진 상황을 기쁨으로 수용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당회원님들!
끝까지 제 가족들을 책임져 주시려는 당회원님들의 그 따뜻한 마음은 감사히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러나 저를 위한 당회의 결의사항만은 주님의 이름으로 정중하게 사양 드림을 널리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지금 주님을 위하여 걷은 이 길은 아무도 걸어갔던 적이 없는 낯선 길입니다. 그렇기에 이 길 위에 우리가 어떤 자국을 남기느냐 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할 것입니다.

당회원님들로 인하여 주님의교회가 주님만이 주인이신 주님의교회로 날로 든든하게 세워지기를 기도드리며, 저희 가족들의 변함없는 사랑을 전해 드립니다.

1998년 6월24일 이재철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