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름다운 은퇴, 아름다운 목사 )

동광교회 김인호 목사



예상을 뒤엎는 후임목사 선정으로 화제를 남겼던, 서울 강남에 있는 동광교회의 전 담임목사 김인호 목사 이야기입니다.

김인호 목사는 동광교회에서 20년 동안 목회를 하고, 지난 11월 25일 은퇴하면서 파격적인 후임목사 임명을 단행했습니다.

김 목사의 아들과 사위를 물리치고, 자신과 개인적 인연이 전혀 없는 장빈 목사를 후임자로 추천한 것입니다.

특히 김인호 목사는 기독교장로회 교단 내에서 대표적인 부흥사였는데, 그런 교회가 40대 인권파 목사를 후임자로 선정한 사실은 한국 교회에서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여졌지요. 사실 김인호 목사는 장로들이 형님과 아버지처럼 따를 정도의 영향력을 지닌 목사였습니다.

대개 이런 교회일수록 목회세습과 섭정으로 문제를 일으키기 쉬운데, 동광교회는 오직 미래의 "목회 비전"에 입각해 만장일치로, 생면부지의 후임자를 선정해서, 우리 교회에 아름다운 선례를 남긴 것입니다. 동광교회가 자리한 서울 강남지역의 특성상 21세기 목회는 문화사역이 중심이 돼야 한다는 게 김인호 목사의 목회비전이었고, 동광교회 전체가 여기에 공감한거죠.

교회 미래에 혜안을 가지고, 그 비전 앞에 자신의 모든 사심을 내어버리는데, 그 교회 공동체가 그것에 따르지 않을 리 있겠습니까?

김인호 목사도 은퇴시 받은 퇴직금 5천만원을 모두 장학기금으로 내놓았습니다. 또 그는 은퇴 후에 동광교회를 떠나서, 그가 소명으로 느끼는 '농촌선교'에 몰두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선배 목사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농촌에서 30,40대 젊은 시절을 보낸 김 목사는 이제 은퇴 후에 연약한 농촌교회들을 순회하면서 순수 선교비를 들고, '하루 부흥회'라도 열어줄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농촌 목회 자체에 대한 소명뿐만 아니라, 동광교회를 떠나 후임자의 부담을 없애기 위한 훌륭한 방법이 되기 때문이라는 거였습니다.

결국 김인호 목사의 '아름다운 제2 목회의 시작'은 바로 동광교회로부터의 '아름다운 퇴장'을 위한 길이기도 한 것이죠.

오늘 이야기한 이 분들에게는 몇가지 공통된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는 교회의 공동체성을 자기 자신보다 중요시한다는 점입니다. 이들은 모두 교회 전체의 뜻이 합치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이를 위해서 비록 그 동기가 어떻더라도 오해의 소지가 있는 일은 적극적으로 피하며 자신의 것을 포기했습니다. 자기가 아니면 안 되고, 교회는 내가 만든 것이라는 사유의식은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둘째는 떠나든지 남든지 후임목사에게 전적으로 위임하고 존중하는 깔끔한 관계를 유지했다는 점입니다. 노파심이나 노욕에서 나오는 섭정, 간섭.. 이런 건 그들에게 최악의 수치였습니다.

셋째는 은퇴 후 우리 교회와 선교의 사각지대를 돌보는 성숙한 제2의 목회를 시작한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시작은 이전 목회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돕는 역할도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아름답게 물러났던 목사님들은 모두 그 삶 자체가 진실했다는 것입니다.

박요한 목사처럼, 신학생들이 시험 때 버젓이 컨닝하는 장면을 보고 신학교를 자퇴한다든지, 김인호 목사처럼, 장로들이 갈리어 싸울 때 책임을 지고 교회를 과감히 사퇴한다든지 자신의 신앙양심 앞에 자기를 부인하며 진실함을 지켰던 삶이 있었다는 것이다. 결국

당당하고 아름다운 물러남은, 그만큼 당당하고 아름다운 삶이 있어야만 가능하고, 물러나는 모습은, 그 이전의 살아온 모습을 그대로 반영한다는 겁니다. 그런 면에서 지금 한국교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리더십 교체의 모습을 다시 주목해 보지 않을 수 없는 거죠.

마지막으로 하나 더 꼭 짚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목사의 부인되시는 사모들의 고생입니다. 앞서 이야기한 목사들의 강직하고 진실한 삶은 바로 그런 삶을 옆에서 살고 그로 인한 고난을 껴안고 감당해낸 사모들의 역할로 말미암은 것이었습니다. 경제적 어려움과 육체적 고통을 몸소 겪어갔을 뿐만 아니라, 당시 만해도 전혀 가정적이지 못했던 그저 바쁘기만 한 목사 남편을 그저 뒷바라지했던 사모들의 아픔.. 많은 사모들이, 그 남편 목사들의 아름다운 물러남 뒤의 새로운 시작을 경험해보지 못하고, 먼저 하늘나라로 불려 가신 걸 보면서, 적어도 이 땅에 살면서 그 분들이 겪으셨던 아픔을 조금 아주 조금이나마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오늘 '아름다운 물러남'을 결단하고 실천한 믿음의 선배들,

그리고 이에 동참한 그 사모들에게

우리가 같이 마음으로 박수를 보냈으면 합니다.

그리고 이런 목회자의 모습이

한국교회 전체로 퍼져나가길 기도합니다.

이지성의 세상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