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의 글은 한 사라선교회회원의 글을  대신 올립니다.)

지난날에 있었던 아픈 기억들을 되짚어 보면서 내일의 새로운 꿈을 이루어 가는데 힘이 되고 싶어서 여러분과 함께 어느 하루를 생각해봅니다. 어느 주일 예배 시간 이였습니다. 설교 도중에 목사님은 종이 한 장을 높이 드시고 흔드시면서 여러분의 장로들이 목사님을 노회 고소한 고소장이라 하시였습니다. 그리고 냉담한 표정과 차가운 음성으로 장로님들의 이름을 차래로 또박 또박 불러 내려갔습니다. 정말 청원서가 아니라 고소(형사사건)를 당했다 해도 성직자로서는 불미스러운 일이어서 얼굴을 감추어야 했을 터인데 고소를 당한 것이 자랑스러운 일도 아니며 영광스러운 일도 아닐 텐데 전교우들 앞에서 당당하게 공포를 하셨는지요?

시무장로님 12명중 여덟 분을 제하면 목사님을 지지하는 분은 4명인데 그 중 한 분은 목사님의 친 처남이며 또한 분은 당회에서 부결 되였음에도 목사님 특례로 장로가 되신 분입니다
이런 상항에서 8명이라는 숫자는 절대 다수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다수에 청원을 당한 사실임에도 부끄러운 줄을 모르고 설교를 중단하면서 까지 모든 교우들 앞에서 떳떳이 공개하는 숨은 뜻은 어디에 있을까?

성도들이 우매해 보여서 청원과 고소를 혼돈하도록 눈속임을 하는 것일까?
성도들이 너무나 어질고 착해서 동정심을 자아내려 해서 이었을까?
목사님이 사실을 인정하여 변명하는 것일까?
목사님 스스로를 욕되게 하는 일인 줄 모르고 하는 일일까?
자신에게 날아오는 화살을 장로님들에게 돌리는 것일까?
이중에 숨은 뜻이 단 한 가지만 있다 하여도 결코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자칭 아버지라 말씀하면서 여덟 분의 장로님들이 노회에 차자가서 한 시간 반에 걸쳐 아버지를 능멸했다는 표현을 하시였습니다. ( 능멸(凌蔑)..업신여겨 깔봄)
왜 능멸이라는 극단적인 단어를 쓰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또한 열두 아들에게 능멸을 당할겄을 아버지로서 부끄러운 일임에 틀림없는데......
정말 능멸 했다면 아버지를 능멸할 수밖에 없었든 아들들의 마음을 헤아려 주셔서 자신을 한번쯤은 돌아 보셔야 하는 것이 아버지의 성품 아닌가요.
잘못된 길로 가시는 아버지를 바른길로 가시도록 노회에 도움을 청한 것이 천하에 불효가 되는 길이고 아버지가 잘못된 길로 가는 것을 보고도 묵묵히 따라 가는 것이 효자라면 여러분은 불효자이면서 효자의 길을 택하신 것인지?
아니면 효자이면서 불효자의 길을 가시겠습니다. 저는 서슴지 않고 전자를 택할 것입니다
아니 그 길을 가고 있습니다. 그 길이 아버지를 참 사랑하는 길이라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우리 성도들에겐 하나님 아버지 이외엔 아버지라 부르며 섬길 분이 안게십니다.
목사님 아버지는 우리가 섬길 대상이 아닙니다. 지도자로서 따를 뿐입니다
우리와 똑같은 하나님의 자녀이며 왕 같은 제상 중에 한 사람입니다
사람은 하느님과 동등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일이 있은 주일 이후에 목사님 측근 중 한 장로님이 “사탄의 공격을 받고 쓰러진  여덟 장로”... 라는 말을 즐겨 하시며 긴급 뉴스인양 방송을 타고 시카고 전역에 널리 알려 졌습니다. 언제부터 인가 여덟 분의 장로님과 가사모 회원 또 거기에 속한 수300여명의 성도들을 향해 사탄과 마귀 때라 불리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들을 향에 사탄이라고 외치던 긴급 뉴스 담당 장로님께서 우리가 사탄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한 자녀라는 것을 인정하는 긴급 뉴스를 하셨습니다. 그 내용을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사탄의 공격을 받고” 라는 말을 주의 깊게 생각하여보면 사탄이 사탄을 공격 했다는 말을 들으신 적이 있으신가요 아니면 성경 어디에 기록 된 것이 있나요? 사탄의 공격 대상은 하나님의 신실한 자녀들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장로님들은 사탄이 아니며 하나님의 신실한 아들들 이라고 그 장로님 입으로 인정하게 하셨습니다. "쓰러진 여덟 장로"라는 말은 주목해 보면 여러분들 중에 쓰러진 장로님을 보시였나요 나도 염려스러워 살펴보았지만 지금껏 단 한 분도 없습니다. (욥기서 참작)

그래서 그 긴급뉴스를 풀이해 본다면 "사탄의 공격에도 쓰러지지 않은 신실한 장로님들"
해석이 제대로 되었나요? 하나님이 그분들을 통해서 우리를 인정해 주시는 것이 아닌가, 믿어집니다.
이런 일이 있은 후 우리의 여덟 분의 장로님들은 더 더욱 마음이 하나로 꽁꽁 묶여져서 똘똘 소리가 날만큼이나 단단해 지셨습니다. 더불어 가사모 회원 또 거기에 속한 우리들까지 견고한 성 같이 마음과 마음들이 하나 되여 감을 감사하고 있습니다.

또 최근 기급 뉴스 담당 장로께서 말씀하시기를 만약 이동관 목사님이 못 오시게 되면 이용삼 목사님이 계속 하시도록 Red Carpet을 깔아 드린다고 하시였습니다. 왜 붉은 색을 택하시었는지? 그분의 깊은 뜻은 알 수 없으나 우리 성도들 간에는 기도와 찬송 가운데 붉은색은 죄의 상증처럼 표현되는 말입니다 "주홍 같이 붉은 죄" "피와 같은 붉은 죄" 죄의 길을 가시라고 붉은색 카펫을 깔아 드리는 것은 아니실 텐데 어쨌든 순간 마음이 선뜻해지는 말 이었습니다

목사님 붉은 색 길로 가시지 마시고 돌아서셔서 늘 말씀 하시던 "초심" 때로 돌아가십시오. 목사님이 말씀하시든 가장 투명 하시였든 그날로 돌아가십시오. 은퇴 하면 가난한(개척) 교회를 두루 다니시며 부흥회를 인도하시면서 여생을 보내시겠다고 하신 그 아름다운 말씀대로 믿고 따르든 목사님으로 도라 가십시오.  그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이목사님의 참 모습입니다

사랑의 불이 꺼진 가나안 교회에 다시 불을 붙여 주실 분은 우리가 그렇게 진실로 진실로 믿고 따르든 이목사님 한분 뿐입니다

"사라 선교회(70새 이상)는 아브라함 선교회 같이 2006년도 선교지는 시카고 기독교 방송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