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란 말이 그리스어로는 크로노스(Chronos)와 카이로스(Kairos)라는 두 단어로 표현된다고 한다. 크로노스는 그냥 흘러가는 시간, 즉 우리가 일반적으로 얘기하는 시간인 반면, 카이로스는 그 시간이 갖는 의미까지를 포함한 표현인데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때(시간)도 카이로스라고 한다. 그리스어나 성경을 제대로 아는 것은 아니지만, 시간을 크로노스와 카이로스로 나누어 가나안교회 사태를 생각해 본다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을 것 같다.

가나안교회의 역사라고 자랑하는 33년(혹은 나머지 3년은 치욕의 시간이니 30년)은 크로노스의 시간일 뿐이다. 1976년 한 한인교회의 부목사로 사역하다 독립해서 개척하는 목사 댁의 거실에서 출발하여 오늘까지 이른 교회의 역사는 저항 없이 흘러가는 시간에 그냥 묻어서 온 것이다. 물론 창립해서 몇 년 되지 않아 문을 닫은 교회도 있고, 가나안교회처럼 분쟁이 생겨 일찌감치 찢어진 교회도 있는 것을 생각하면 30년이란 긴 세월을 견뎌 온 것도 대견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해체의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는 카이로스의 시간으로 가나안교회의 역사를 평가하고 또 전망하는 것이 더 적절치 않을까 싶다.

지난 30년 동안 가나안교회는 많은 사람을 예수께로 인도했고 상당 수의 목회자도 배출했으며 미국 밖의 여러 곳에 선교활동도 펼쳤다. 미미한 거실에서의 시작이었으나 본당 건물에 수백만 불 규모의 비전센터뿐 아니라 넓은 주차장과 기도원까지 거느리며 1000명 교인을 자랑할 정도의 창대함을 이루었다. 그리고 우리는 이 모든 것이 하나님 보다는 무대 뒤에 선 유능한 목사의 자질과 성실함 덕분이라 여겨왔다. 언제나 무대 앞에는 무럭무럭 자라나는 교회만 있었고, 관객석에서 치는 박수 소리에 고무된 교인들은 무대 뒤에서 지휘하는 목사와 사모의 지시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욕을 먹어도 자존심이 상해도 마냥 묵묵히 시키는 대로 따랐다. 그러므로 "무대 뒤 안에서 희생하고 봉사한 교우들에 의해서 가나안이 이루어졌다."라는 말은 백 번 맞는 말이다.

박수를 안 받았다고? 맞다. 목사는 무대 앞에서는 박수를 받지 않았다. 관객은 무대 위에 올려진 교회를 향해서만 박수를 쳤으니까. 하지만 무대 뒤에서 목사는 모든 교인들을 꼼짝 못하게 하고 손 끝 하나로 그들을 움직이는 지휘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물론 그는 관객의 박수가 누구를 향하고 있는지도 알고 있었다. 뿐만 아니다, 동료 목사들이 모이는 노회에서는 성공한 목회자의 모델처럼 소리 없는 박수와 함께 질시까지 받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1막이 끝나고 2막이 공연될 때가 왔다. 2막은 무대 앞 교회와 뒤편의 교인들은 그냥 있지만 지휘하는 목사는 바뀌게 된다. 목사는 이제 무대 앞으로 나가 교회의 멋진 공연에 대한 커튼 콜을 받고 공연장 밖으로 나가면 된다.

무대 앞으로 나가 아름답고 웅장하게 서 있는 교회와 비전센터를 잠시 돌아 보니 그냥 놓고 떠나기가 너무도 아깝다. 갈등 끝에 다시 무대 뒤로 돌아온다. 아들도 데려다 놓고, 후임도 자신이 정해야 마음 놓고 떠나겠단다. 무대 뒤는 소란스러워지고 앞에 서있는 교회도 흔들거린다. 박수를 치던 관객은 하나 둘 떠나고, 어떤 이들은 돌도 던진다. 무대 뒤에서는 둘로 나눠진 교인들이 무리를 지어 서로를 향해 삿대질을 해댄다. 한 무리의 중심엔 목사가 서 있고.

결국 공연 감독관청에서 사람들이 나왔다. 꽤 오랜 시간 양측을 오가며 얘길 해 보더니, 다른 방법은 없고 공연해산이란다. 목사와 그 지지자들은 해체는 절대 안 되고 무대 위의 교회를 내어 놓으라고 소리치면서 법정 소송도 불사하겠단다. 공연장의 모든 불이 하나 둘 꺼지고 있다.

박수 받던 사람들이 교회를 해체시키려 하니 뻔뻔하다고? 담임목사 재임 시 여기저기 숨겨 놓은 항목으로 교회 재정으로부터 온갖 혜택을 다 받다가, 은퇴하면 교인들이 힘들여 헌금한 돈으로 부었던 국민연금과 교단 연금을 받을 텐데도 매월 적지 않은 돈을 또 요구하고, 교회가 운영하는 학원까지 달라더니, 입에 맞는 후임을 앉혀 놓고야 물러나겠다고 버티다 교단 탈퇴한다고 들락거려 결국엔 교회 해체까지 초래한 장본인이 쓴 글 치고는 상상을 뛰어 넘는 내용이다. 정말 대단한 후안(厚顔)이다.

교회가 고독하다고? 천만의 말씀이다. 크로노스의 시간으로는 33년의 역사가 종결되는 것일 테지만 카이로스의 시간으로는 가나안교회의 새로운 시작이 될 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때(카이로스)를 거스려 홀로 남게 된 목사는 고독하겠다. 하나님께 위로를 구할 수 있기를...

참, 시간 얘기를 하자면 떠오르는 또 다른 한 사람이 있다. 하나로 웹 게시판에서 거짓과 독자를 무시하는 저급한 글로 4월 24일에 관리자로부터 한시적 퇴출을 당하자, 불만을 표하며 자진해서 영구퇴출이 되어  주겠노라고 큰 소리 치고 나갔다가 두 달이 조금 지난 7월 1일에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나타나 예의 성화구원론을 주장하는 글을 올린 김병구씨다. 이미 오래 전에 목사로 부터 팽 당한 듯 보이는데도 여전히 그 쪽의 브레인으로 자처하는 그에게 있어 영구(영원)의 시간은 두어 달 정도 되는 모양이다.

비장한 모습으로 정계은퇴를 선언했다가 슬그머니 대통령에 다시 출마했던 정치가나 "나가는 사람 등 뒤에서 돌 던지지 말고 제발 은퇴를 믿어달라"는 말을 수 없이 되풀이 해 놓고는 3년 이상을 눌러 앉아 은퇴 얘기는 다시 입 밖에도 안 꺼내고 없던 일로 만들어 버린 목사도 낯 뜨겁지만 "국민이 원해서" 다시 출마를 하고, "교회가 어지러워서" 은퇴를 못한다는 변명이라도 내어 놓았었다. 그토록 당당하게 자진 영구퇴출을 당하고 뛰쳐 나간 김병구씨는 겨우 두 달만에 슬며시 들어왔지만 여전히 자신의 영구퇴출을 번복한 것에 대한 변명이 없다.  굳이 물어 본다면 또 어떤 기상천외의 대답이 나올까 궁금하기도 하다. 초록동색이고 청출어람일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