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2월 한국에서는 엄청난 사건이 있었습니다. 오후 4시경 백주대낮에 20대의 한남자가 자신의 어린 자식들을 한강에 던져 살해한 사건입니다. 도박 빚으로 인해 생활고에 시달린 것이 살해동기라 했는데, 정작 자식들을 살해한 파렴치한 범죄보다도 그의 뻔뻔스러운 인터뷰 내용이 더욱 충격이었습니다. 만약 자식을 살해할 정도 생활고에 시달렸다면 왜 본인은 정작 자살하지 않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나는 하나님을 믿는 종교인으로서 자살하지 못합니다.” …..
1000만 기독교인들을 경악시킨 이 사건은 잘못된 신앙관과 왜곡된 믿음에서 오는 도덕 불감증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보여주는 사건이었으며, 이 한 사람으로 인해 한동안 기독교계가 세상사람들로부터 엄청난 지탄과 조롱을 받았습니다.  
요즈음 계속되는 25명 목사들의 정치성 광고와 10년이상 함께 해온 장로와 집사들을 반대한다는 이유만으로 제적한 이용삼목사의 치졸한 행위들을 보면서 세상 사람들은 과연 기독교계를 향해 무슨 말을 할까 두렵습니다. 점입가경으로 행해지는 이용삼목사의 파행적이고 편협적인 행동을 과연 노회는 막을 길이 없는 것인가요? 막지 않는 것인지, 막지 못하는 것인지 분명한 노회의 입장을 알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정의를 단호히 시행하여야 하는 교계의 지도자 분들께서 인간적인 이해 관계에 사로 잡혀 동업자로서의 동정심 때문에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스스로 성직자임을 포기하고 종교인으로 전락하는 제2, 제3의 이용삼목사가 더 이상 나오지 않기를 바랍니다.
저는 처음부터 개혁을 주장하였지만, 이 길만큼은 피하고 싶었습니다. 너무나 힘들고 어려운 교회개혁을 감당할 만큼, 우리의 믿음이 강한지 의문도 생겼습니다. 그러나 지난 3개월여 동안 보여준 여러분들의 강한 의지는 때론 격한 감정으로 우려감마저 들었지만, 성숙한 선한 싸움으로 이끌어 왔습니다. 개혁은 혁명이나 쿠테타처럼 상대의 파멸로 기득권을 쟁취하는 것이 아닙니다. 개혁을 반대하는 기득권층이 개혁론자들을 극단적인 사회분열론자로 매도하는 것이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개혁을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를 마귀, 사탄으로 몰아세우는 것이 그들의 생존전략이기도 한 것입니다.
개혁은 옳고, 그름을 깨우치고, 옳은 일을 떳떳이 추진해 나가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행복해 지기 위해 일하는 것입니다. 권리에 대한 주장을 잠시 접어두고, 의무를 다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의 의무는 하나님의 복음을 세상에 전하고, 성도가 모두 참여하여 교제를 나눌 수 있는 아름다운 교회를 만들고, 우리의 모든 것을 어려운 이웃과 사회를 위해 희생하는 예수님의 삶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목회자의 의무는 성도를 사랑하고, 성도들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세상 사람들 앞에서 한점 부끄럼없이 성스러운 삶을 살아가도록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뜻있는 목사님들도 개혁에 동참해 주시기를 강력히 호소합니다.
개혁은 대중들의 지지와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한다면 성공할 수 없습니다. “이용삼목사로부터 시작된 문제이니 이용삼목사가 물러남으로 끝을 내야 한다”는 논리는 대화와 타협으로 갈등을 풀어간다는 전제에서 가능한 것입니다. 이용삼목사의 퇴진은 이제 개인의 문제입니다. 지난 1년간의 싸움에서 우리는 가나안 교회 30년이 얼마나 창피한 역사인지, 그리고 그의 30년 교회운영이 얼마나 비민주적이고, 부도덕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거리로 나선이상 이제 거리의 사람들과 공감대를 형성해야 합니다. 가나안교회 문제는 작은 한인 커뮤니티에서 일어나는 집단간의 갈등이 아닙니다. 미국의 기독교 장로교 산하 대형교회에서 일어나는 부도덕한 목사와 그 추종자들이 그들만의 교회를 만들려는 심각한 사회문제입니다. 각종 세제 혜택과 성역으로서 사회의 관리 감독을 피할 수 있는 면죄부까지 주어지는 교회가 그 규모에 맞는 역할과 사명을 다하지 못한다면 국가와 사회가 개입하여야 합니다. 성경의 부분적 인용으로 자신의 개인적 욕망과 야망을 합리화시키고, 이를 위해 기독교의 근간과 교리마저 흔드는 목사를 지역노회가 치리하지 못한다면, 미국 장로교단 본부에서 개입하여, 하나님의 정의를 구현하여야 합니다.
지난 일요일 파행적 공동회의에 170명 정도가 참여하여, 아무 반대의 소리도 없이 이용삼목사의 시나리오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고 합니다. 이제 더 이상 선과 악의 싸움에서 중도는 없습니다. 진정한 중도는 이미 가나안 교회를 떠나 다른 교회에 다니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용삼목사가 나쁘다’, ‘추종하는 사람들이 더 한심하다.’ 이러한 논쟁은 더 이상 의미가 없습니다. 그들 모두가 잘못된 길을 선택하였습니다. #813 글에 올라있는 2007년 가나안 교회 핸드북을 확인한 결과, 다행히 제 이름은 비활동 교인에 올라있었습니다. 가나안 교회가 아닌 그들만의 모임에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내 이름이 활동교인에 올라 있다면 심히 불쾌했을 것입니다. 혹시 잘못되어, 그들 모임에 활동교인으로 오른 분들은 반드시 잘못을 바로 잡아야 합니다. 교회에 전화하여 이름을 빼달라고 강력히 요청하십시요, 그리고 노회에 전화하여 잘못된 것을 알려야만 합니다. 그들의 잘못된 길에 들러리가 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가장 모범적인 민주주의 국가인 미국에서, 그리고 개신교의 역사가 시작된 기독교 국가인 미국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고 있는 한 목사의 비행을 막을 방법이 진정 없는 것입니까? 상식을 깨고, 하나님의 법이 인간의 법보다 우선한다는 망발을 일삼는 그들에게 인간의 법이 하나님의 법에서 나왔다는 미국 헌법의 평범한 진리를 일깨워 주는 역사가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소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