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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종말 믿었다 신세 망친 사람 한둘 아니네.'  

직장 포기, 고별 여행, 재산 처분... 추종자들, 예언 빗나가자 "성경 더 읽자"
올랜도 거주자인 알 알렌은 지난 21일 금요일에 가게에 가서 물병을 사며 그 물이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마실 물이 될 것이라 믿었다. 그리고 다음날 토요일에 닥친다는 지구 종말 예언설을 믿지 않는 세 명의 성인 자녀들에게 작별인사를 고했다.

알렌은 지구의 동쪽부터 시작해 각 시간대에서 다음 날 오후 6시에 닥칠 지진으로 세계는 이른 바 '심판의 날'에 들어가고 선택된 자들이 하늘로 올라간다는 종말 예언설을 믿었던 사람 중 하나였다. 5월 21일 '심판의 날'은 캘리포니아 새크라멘토에 본부를 둔 '패밀리 라디오'의 창설자 해럴드 캠핑(89)의 예언에서 비롯됐으며 적극적인 홍보로 인해 전 세계에 빠르게 퍼졌었다.

화학자 출신으로 68세인 알렌은 부인과 함께 캠핑이 예언한 뉴질랜드 지진을 기다렸지만 오후 6시 예언 시간이 지나고 다음 날 새벽 2시가 지나도록 TV에서는 지진 뉴스가 뜨지 않아 잠자리에 들어갔다. 알렌은 아침 8시에 일어나 커피를 마시며 TV를 다시 한 번 확인했고, 이후 성경을 펼쳐 예수의 재림이 나와있는 부분을 읽었다고 지역 신문인 <올랜도센티널> 22일자에 전했다.

"성경을 더 많이 공부하겠다"

알렌과 비슷한 지역에 살고 있는 허버트 워커 역시 캠핑의 예언을 믿지 않는 자녀들과 전화로 작별 인사를 나누는 등 예언이 실현되기를 기다렸으나 오후 6시가 지나도 지진은 발생하지 않고 하늘에서도 어떠한 징조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워커 역시 얼굴색을 붉히지 않고 "성경을 더 많이 공부하겠다"는 말만 전했다.

알렌과 워커처럼 캠핑을 지지하고 그의 예언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던 이들은 대체로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그들은 "성경은 진실을 말하지만 인간이 이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것일 뿐"이라며 앞으로 성경을 더 연구하겠다는 의견을 보였을 뿐이다.

캠핑의 홍보 담당자였던 탐 에반스 역시 "성경을 너무 지나치게 해석했을 뿐"이라며 "패밀리 라디오에 대한 충성심은 여전히 지킬 것" 이라고 에 전했다.

이들이 추종하는 캠핑은 최근 라디오와 인터넷 등을 통해 21일에 대 지진이 일어나고 예수가 재림해 믿는 자들을 이끌고 하늘로 올라간다는 이른바 '휴거(rapture)'가 일어날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패밀리 라디오'의 자산은 1억2,200만 달러에 이른다. 캠핑은 지난해부터 이 돈을 TV와 신문 등 미디어 광고는 물론 광고판과 포스터, 전단지, 버스 옥외 광고 등에 쏟아 부었다. 덕분에 '심판의 날'은 전 세계에 퍼졌고 많은 사람들의 흥미를 일구어냈다.

그의 시나리오에 따르면 불신자들은 지구에 남아 5개월 동안 자연재해와 전쟁, 전염병, 기아 등으로 고통을 받다가 10월 21일 지구와 함께 멸망한다는 것이다. 캠핑은 노아의 홍수가 발생한 지 정확히 7,000년 된다는 이유로 종말 시기를 2011년 5월 21일로 잡았다. 캠핑은 17년 전에도 '9월 6일 종말론'을 내세우다 예측이 빗나가자 계산에 착오가 있었다는 변명을 늘어놓은 바 있다.

캠핑은 자신의 예언이 빗나간 후 줄곧 침묵을 지킨 것으로 알려졌다. 탐 에반스는 22일 < ABC뉴스 >와 인터뷰에서 21일 아무 일도 없자 캠핑이 오클랜드의 자택에서 "다소 당황하고 혼란스러워하고 있다"며 어떤 말도 공식적으로 하지 않을 것이라는 캠핑 부인의 말을 전했다.

그러나 그의 딸 수 에스피노자는 자신의 아버지의 예언이 실현되는지 보기 위해 역시 TV를 켜둔 채 자신은 마당에 나무를 심었다고 <LA타임스>에 전했다.

에스피노자는 예언이 빗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버지 캠핑이 자신에게 전화를 걸어 "종말이 닥치지 않아 당황스럽지만 21일은 아직 다 지나지 않았다"며 "자정까지 지켜볼 것"이라 말했다고 전했다.

"캠핑은 삶을 파괴하는 시스템 만들어 왔다"

캠핑의 예언이 빗나간 후 패밀리 라디오 본부 앞에 모인 사람들 중 침례교 집사인 제임스 바이넘은 캠핑의 잘못된 예언을 지적하는 사인을 들고 있었지만 자신은 이번 사건으로 실망한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 왔다고 전했다. 바이넘은 "캠핑의 예언은 잘못됐지만 그렇다고 그가 이단같은 존재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며 "그러나 캠핑은 상당수 사람들의 삶을 파괴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왔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캠핑의 예언을 믿었던 많은 이들은 직장을 포기하거나 친지들과 결별하고 수개월을 홍보하는 데 보냈다. 뉴욕에 사는 퇴직자 로버트 피츠패트릭(60)은 캠핑의 말을 믿고 거의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14만 달러를 예언을 홍보하는데 쏟아 부었다.

캘리포니아에 사는 바우어 부부는 이른바 '심판의 날'을 앞두고 두 아이들을 동반한 채 1주일간 여행을 했다. 지구에서의 마지막 일 주일을 그동안 자신이 꼭 가보고 싶었던 그랜드 캐년 등지를 방문하며 지내고 싶다는 마음에서였다.

트랙터 운전일을 하며 크레디트카드 빚과 밀린 요금 고지서들을 잔뜩 안고 있는 바우어는 '심판의 날'이 결코 두렵지 않았다. 그러나 캠핑의 예언이 빗나가자, LA 오클랜드 패밀리 라디오 본부의 굳게 닫힌 문 앞에서 수많은 취재진들에 둘러싸여 씁쓸한 심정을 토로했다. 그는 "가장 최악의 시나리오는 내가 이 시간 이 땅에 서 있는 것을 보는 것이었다"며 "화풀이 대상을 찾아야 한다면 그 대상은 바로 나 자신이 될 것"이라 전했다.

한편 캠핑은 24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10월 21일은 진짜 지구 종말의 날이 될 것"이라면서 "5개월 동안 세상이 서서히 파괴되는 것이 아니라 한순간 모든 것이 사라질 것"이라고 또 말을 바꿨다.

최정희·김명곤 / <코리아위클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