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웅님의 교회를 사랑하고 목자를 존경하는 마음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김희웅님!!
이용삼 목사님이 1976년 11월 28일 자택에서 첫 예배를 드린 후에
1977년 1월 19일에 교회명칭을 나일스 한인장로교회라 하고,
1978년 9월 시카고 노회에 가입하고,
1982년 5월 새 성전 헌당예배와 함께 “가나안 장로교회”라 변경한 뒤에 오늘에 이르렸습니다.

김희웅님의 쓰신 글에서 제가 몇 가지 제 생각을 쓰고자 합니다. 김희웅님께 무례가 되더라도 이해를 바랍니다.
괄호안의 글은 제 생각입니다.

1.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으로 인해서 휘장이 찢어지기 전까지 지성소는 아무나 가서 하나님께 할말 못할말을 하는 곳은 아니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예배당, 성소라고 하는 곳은 바로 그 지성소 입니다.
(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이후로 구약에 지성소는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구약시대에 있었던 제자장을 통하지 않아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길이 열였습니다.
김희웅님의 말대로 우리 가나안의 예배당이 아직까지 구약의 지성소라면, 저는 벌써 죽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아직도 살아있습니다. 그것이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로 가능해졌다는 것을 김희웅님도 동감하실 겁니다. 지금은 성령이 주관하시는 은혜의 시대입니다. 김희웅님도 동참하시기를 바랍니다.)


2. 교회는 크게 둘로 나누어 집니다. 목회자와 평신도. 목사님, 강도사, 전도사를 제외한 나머지 분들은 다 평신도 입니다.
(장로교는 크게 둘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직책을 사명받은 자로서 신약에 언급된 교회의 직책은 장로(말씀과 성례전의 목사와 장로)와 집사 직책을 말하고,
2) 교인이 있습니다. 교인에는 활동교인과 비활동교인이 있습니다.)


3. 교회가 언제부터 민주주의 였습니까? 민주주의 사회에 교회가 존재하는 것 뿐이지 교회는 민주주의도 공산주의도 사회주의도 독재도 아닙니다.
(김희웅님! 교회에는 신본주의에 기초한 교회적 민주주의가 있고, 사회에는 인본주의에 기초한 사회적 민주주의가 있습니다.
장로교 정신은 하나님의 뜻이 회중의 집단 의지를 통해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것은 PCUSA G-6.0107항에서 잘 알 수 있습니다. “장로교의 정치는 대의정치이며, 교회의 제직원을 선출하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이다. 그러므로 아무도 해당기관의 선출에 의하지 않고는 교회나 교회의 치리회에서 영구직을 맡을 수 없다”로 되어 있습니다.
참고로 대의정치 뜻은 민주정치의 중요한 원리의 하나로, 국민이 선출한 대의원으로 의회를 이루고 그들이 국민을 대신하여 국가의사를 의논 결정하는 방식에 의한 간접 민주정치를 말합니다.)


4. 물론 우리도 왕같은 제사장이지요. 우리가 있는 사회 속에서, 우리가 싸우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왕같은 제사장입니다. 하지만 교회에서 왕이고 제사장은 목회자입니다.
(신약에서 목자는 복음을 모든 사람에게 전하며 복음의 기쁨과 정의를 전달하고, 말씀을 연구하고, 선포하며 세례와 성찬예식을 집행하며 교인들을 위하여 정죄가 아닌 기도할 책임을 다해야합니다. 교회에서 일하는 그리스도의 종은 사역자 즉, 목사와 부목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희웅님!, 왕이 아닙니다.
또 목사와 부목사는 하나님의 많은 은혜와 그리스도에 의해 제정된 성찬을 분배하는 자로 하나님의 성찬의 청지기입니다. 목사는 제사장이 아닙니다. 김희웅님! 신약에는 주 예수그리스도가 우리의 제사장입니다.)


지면관계상 제가 김의웅님에게 하고 하고 싶은 말은
글 119번 “정말 목회자를 비방하면 하늘의 벌을 받습니까? “와
글 196번 “민주적 교회 운영의 디딤돌”을 보시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몸 건강히 군복무를 충실하시기를 바라고, 휴가를 나오시면 직접 보면서 성도간의 친교를 나누었으면 합니다.
저는 디모데 선교회에 있는 최항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