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중에는 아담과 이브가 낙원에서 쫓겨나 지금 회교도성지인 아랍의 메카 와 제다 근처에서 죽었다고 하나 비석을 세우지 않는 그쪽 풍습에 의해 정확한 위치는 모른다고 합니다.
사람이 죽고 나면 비석을 세우고 그 비석에 살아생전의 공적이나 생각을 쓰기도 하고 쓸거리가 없는 사람은 후손의 이름을 새겨 놓습니다.

수양대군이 구데타를 성공하자 부제학 조상치는 낙향해서 죽기 전에 자기 비문을 스스로 썼는데 다듬지 않은 보통 돌에 '魯山朝 逋人 曺尙治之墓' 라고 썼습니다.
세조가 있는 한양 쪽은 돌아보지도 않고 살다가 간 그의 묘비명의 뜻은 ' 옛 임금 단종의 신하로 도망쳐 망명하고 살다가 죽은 조상치 의 무덤.'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포인이라는 말을 써서 세조 너의 나라가 아닌 망명 처에서 살았노라고 하는 뜻을 밝혔습니다. 지금도 그의 고향 영천에는 그 비석이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죽기전에 비문을 쓰고 후세들이 비문대로 비석에 올린 비석을 '비갈'이라고하는데 대표적인 비갈은 국보 7호 봉선 홍경사의 비갈이 있습니다.

이렇게 죽어서까지도 자기의 의지를 나타내 비문에 새겨 놓은 사람은 그래도 다행인데 이긴 자가 권력을 쥐고 살아있어 그런 碑銘조차도 못 쓰는 사람은 저항의 뜻으로 자기 이름까지 쓰지 않고 비석만 세우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렇게 아무것도 쓰이지 않은 비석을 白碑라고 합니다.

명종 때 호조판서를 지냈으면서도 집 한 채 없이 죽은 박 수량(朴 守良)이 세도정치에 항의해 죽고 나서 이 백비를 세웠습니다.

한국의 국립묘지에는 수많은 비석이 있고 모든 비석에 비명이 있습니다.
규정에의 해 비석은 세워야하는데 이름을 모르는 무덤에는 '무명용사' 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오직 한 장군의 묘지에만 아무것도 쓰이지 않은 이 까만 백비가 있습니다.
12/12 사건 때, 권력을 잡기 위해 주인을 총칼로 위협하고 강탈을 한 신 군부 측에 저항하다가, 변절한 부하의 총에 팔에 상처를 입은뒤 자기가 직접기른 전두환에 의해 모진 고문을 당한뒤 페인이되어 의문사를한 특전 사령관 정병주(鄭柄宙) 장군의 무덤입니다.
이 더럽고 흉악한 세상에 그들과 더불어 숨쉬고 살았다는 것마저도 부끄러우니 흔적마저도 남기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가족들이 얼마나 원통하고 분하면 그런 비석을 세웠겠습니까 ? 그의 유언은 '내가 가진것 전부 불태우고 작업복 하나만 남겨두라.' 라고 했다고합니다.

가나안교회, Web Site에서 7월 16일 설교를 들어보시면 '전 두환 대통령이라면 항상 장 세동이라는 대단한 부하가 있습니다. 불변하는 의리지요. 그런 사람, 그런 사람 ! 때 때로 가만히 생각하면 말이지요. 이런 세상 적인 의리만 봐도 때때로 어설픈 믿음보다 훨씬 귀하다고 종종 생각합니다.'
7월 설교의 주제는 '제자의 길' 이었습니다. 설교는 '세상은 힘의 논리입니다. 남을 밟고 승리를 합니다.'로 시작됩니다.

전두환은 말할 필요도 없이 나라를 강탈하려는 과정에서 국민을 학살하고, 한국 민주주의를 10여 년 후퇴시키고, 필요하면 자기에게 유리하게 법을 바꾸고, 바른말하는 학생들은 최루탄으로 누른 역사상 유래가 없는 부정 부패의 표본입니다.
장세동, 한국인이라면 어린아이까지 아는 전두환의 못된 짓에 앞장선 인간입니다.

가나안의 주인이 이용삼 목사 개인이 아니고 주님이시며 교인이 듯이, 군인의 주인은 전두환이 아니고 국가와 국민입니다.
법을 무시하는 깡패나 정권찬탈을 하는 무리의 의리를 '그래요, 그래요!'로 강조하며 칭찬하는 말을, 30년을 같이한 교인들 앞에서, 최소한의 양심과 지성을 가져야 할 목사의 설교라고는 생각 할 수 없습니다.

대통령이 임명을 했으니 대통령의 말을 따르는 것이 '의리' 이 듯, '내가 임명한 집사고 장로이니 내 말을 따르라.' 라는 뜻인 듯한데 대단한 착각을 하시는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가나안의 집사나 장로는 주님이 안수를 주시고 주님이 임명한 '주님'의 집사이고 장로이지 '이 용삼 목사' 개인의 집사나 장로가 아닙니다.
확실히 해 둡시다. '주님의 이름으로' 안수를 받고 임명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목사, 장로, 집사가 주님의일을 하는 평행선상에 있는 동격의 '직분'이지 목사가 위에있고 집사가 그 밑에있는 '직위'가 아닙니다.
가나안 장로교가 개인 Club이 아닌 이상, 절대 ' 이용삼의 이름으로' 는 안수나 직분을 맡을 수 없습니다.

백비를 쓴 '정병주 장군의 의리'가 주님의 생각이 라면, '장세동의 의리'는 설교가 아닌 이 용삼 목사 개인의 말장난에 불과합니다.

참고로 이날 설교의 주제는 '종'입니다. 행여 이용삼목사의 '종'이나 '소'가 되시지 않기 바랍니다
계속된 설교(?)의 정육점에 보낼 소들은, 그렇게 훈련을 시켰는데도 주님의 말씀에 따르지 않고, 깡패나 전두환의 장세동같이 의리 지키겠다고, 한 개인의 과욕에 따르려는 일부 교인을 지목한 말씀이라고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