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화가 영생으로 가는 필수 과정…웨스트민스터 '성화교리'가 칼빈 '성도견인' 대안
2005년 03월 05일 (토) 08:36:33 [조회수 : 1883]  김병구

종교개혁 이후 100년 동안 교리개혁에 힘써온 개혁 교인들은 점차 신앙개혁을 통한 삶의 개혁이 없이는 온전한 종교개혁이 될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하여 경건주의와 퓨리턴이즘은 하나님의 은혜에 치중하여 인간의 책임을 도외시하고, 지적 믿음에 치중하여 신자의 행위를 소홀히 한 칼빈의 견인론을 성화교리로 대체할 것을 시도했다.

이를 반영하여 칼빈의「Institute of the Christian Theology」가 출판된 지 근 110년 후인 1646년, 3년 동안에 걸친 논의 끝에 완성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칼빈의 견인론을 성화교리로 대체하는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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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견인론의 구조적 결함

원래 칼빈의 성도견인론은 구원이 성도의 의지 및 행위에 무관하게 객관적으로 보장됨을 가르치려는 시도다. 그러나 구원이란 성도가 주관적으로 관여되는 과정일 수밖에 없음에 비추어, 성도의 의지나 행위가 없는 구원이 보장된다고 가르치는 '성도견인교리'를 세우는 것은 근본적으로 불합리한 일이었다.

첫째, 신자가 어떻게 자신이 은혜의 자리에 처해 있는지를 알 수 있는가? 둘째, 하나님의 절대주권이라는 주춧돌 위에 세워진 논리상의 구원 보장은 신자의 심리적 불확실성을 해소하기보다 그것을 강화한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은혜란 인간이 무의식 상태에서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간과 만나주시고 그 인간에게 반응하여 베푸시는 것으로, 인간이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성격의 것이다. 논리적 확실성이라는 개관적 기초 위에 구원의 확실성을 세우려는 시도는, 구원의 성격을 인간과 하나님의 교제로부터 인간을 일방적으로 처리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한다.

인간이 전혀 개입되지 않는, 그러므로 인간이 의식할 수 없는 구원을 인간더러 믿으라고 하는 것은, 로봇 같은 인간이거나 평균 이하로 어리석은 인간이 아니라면 자신의 구원이 확실하다고 믿기보다는 자신의 구원에 대하여 더욱 불안해하게 될 것이다.

성화교리로 성도견인론을 대체

이와 같은 성도견인론의 구조적 결함을 인식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이 결함을 '은혜의 자리'라는 개념을 도입함으로써 해결한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17장(성도견인) 1은 "하나님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받으시고 그의 영으로 효력 있게 부르시며 거룩케 하신 자들은 '은혜의 자리'로부터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떨어져 버릴 수 없고; 그 안에서 확실히 끝까지 견디며 영원히 구원을 얻을 것이다"고 기록한다. 그리고 곧 뒤를 이어 제18장(은혜와 구원의 확실성에 관하여)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참으로 믿고 성실하게 그를 사랑하고 그의 앞에서 모든 선한 양심에 따라서 행동하기를 노력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있어서도 그들이 '은혜의 자리'에 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으며"라고 기록한다.

제17장 1과 제18장을 결합하면, 하나님께서 부르셔서 구별(거룩함의 다른 의미)한 자들은 '은혜의 자리'로부터 떨어져 버릴 수 없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참으로 믿고 성실하게 그를 사랑하고 그의 앞에서 모든 선한 양심에 따라서 행동하기를 노력하는 사람"이 그러한 '은혜의 자리'에 있음을 확신할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 이는 사실상 성화의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만이 '은혜의 자리'에 있음으로 해서 끝까지 견디어 영원한 구원을 얻을 것임을 가르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한번 칭의구원'을 받은 신자는 신자의 의지나 행위와 무관하게 하나님의 절대주권으로 끝까지 견디어 영원히 구원을 받을 것이다는 칼빈의 성도견인론을 사실상 제거하고, 칭의구원을 받은 신자는 성화의 과정을 거쳐서 영생을 얻는다는 '성화교리'로 성도견인론을 대체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지켜야

한국의 장로교단들은 1907년부터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교단과 교회들이 헌법에 자기 교단 및 교회의 신앙고백으로 규정해 오고 있다. 그럼에도 오늘날 많은 교회의 목사님들이 칼빈의 성도견인론에 입각한 '한번 구원, 항상 구원'을 가르치고 있는 현실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우리 모두 우선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으로 돌아가자. 그리하여 성도견인론을 과감히 버리고 성화가 영생으로 가는 필수적 과정임을 가르치자. 이것이 성경으로 돌아가는 첫걸음이다. 우리는 칼빈을 믿은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아닌가.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오늘도 우리들에게 말씀하신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 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