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구 장로님께,

Ken Lee님께서 인용하신 장로님의 뉴스앤죠이 기고문과 며칠 전 이곳 게시판에 올리신 “세상적이지 못한 목사님 보다는 사랑 없는 일부 시무장로님들을 위하여 기도합니다”란 글을 함께 읽으면서, 장로님의 견강부회와 곡학아세가 도를 지나치기에 안타까운 마음으로 몇 자 올립니다. 장로님의 글에서 발췌한 주요 사안에 대해 답을 하려합니다.

1. 가사모 편지는 분열을 조장하고 사랑이 아니라 미움이 깃든 내용들이다?

먼저 가사모가 편지를 보내게 된 배경을 간단히 설명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지난 연말 제직회와 신년 공동의회를 거치면서 가나안교회 교인들과 담임목사님에게는 전혀 면역이나 저항력이 없는 일들이 닥쳤습니다. 담임목사님께서 당회에 제출한 원로목사 청원 건이 그렇고 김종대 목사님의 담임목사 추대 부결 건이 그랬습니다. 원로목사 청원 건은 가나안교인들이 알아 왔던 이용삼 목사님의 목회관과 인격으로는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 일이었고, 담임목사 투표 부결은 이용삼 목사님께서 알아 왔던 가나안교인으로서는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행동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충격 속에서 소문과 추측이 나돌고 이를 확인하고 바로잡기 위해 몇몇 집사들의 의견교환이 시작되면서 이름 없는 모임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가사모라는 공식 이름은 편지의 발신인으로 처음 사용되었습니다.) 편지에 쓰여진 바와 같이 제직회에서 질문을 해도 묵살되거나 차단되었고, 어렵사리 마련된 목사님과 집사들의 면담도 별무소득이었습니다. (편지가 보내지기 전까지는 면담에서 목사님이 약속하신 것들이 하나도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언로가 되어주던 교회 웹사이트 게시판도 폐쇄되었습니다.

그럼에도 가사모는 4월 연합제직회까지는 교회나 교인들을 향한 아무런 공식행동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첫째는 원로장로님들과 당회원들 그리고 집사들의 건의와 충언에 목사님께서 반응하실 것을 고대했기 때문이며, 둘째는 많은 분들이 염려하듯이 공식 행동으로 인하여 교우들의 편가르기가 표면화 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연합제직회는 가나안교회 30년 역사에 전례 없는 긴장감과 호전적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고, 제직회가 끝난 뒤 교회 뜰에서는 엊그제까지 함께 사랑을 나누던 교우들 간에 고성이 오가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이에 가사모는 격렬한 내부토론 끝에, 교회 문제가 여기까지 이르게 된 배경과 원인 및 해결을 위한 노력에 대해 알리는 것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편지를 보면 문제를 지적하고 해결을 촉구하는 것에 머무르려고 애썼음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가사모의 편지가 "사랑이 아니라 미움이 깃든 내용"이라고 하신 말씀에 책임 질 수 있으신지요?  

2. 이용삼 목사님께서 영예롭게 은퇴하신 연후에 교회 개혁을 추진하는 것이 순서?

이용삼 목사님께서 자주 지적하듯이 한국 정부가 과거사에 매달려서 나라가 혼란스러워지는 모습을 우리는 지금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과거사 청산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진행의 미숙함과 불공평함 있습니다. 더욱 더 근본적인 문제는 청산이 제때에 이루이지 않고 이제 와서 시행하느라 마치 생사람을 잡는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장로님 말씀대로 지금 문제가 있긴 하지만, 은퇴하는 목사님을 개혁하는 것이 옳지 않으니 새 목사님이 오셨을 때 개혁을 한다면 어떻게 될 지 아십니까? 새 목사님으로서는 두 가지 중 하나를 택해야 합니다. 과거의 문제를 그대로 안고 별일 없는 듯 이목사님의 목회를 답습하거나, 개혁의 당위성을 위해 이목사님의 목회는 잘못된 것이고 개혁해야 할 대상임을 천명하고 과거와의 힘든 싸움을 해야 합니다. 장로님은 어느 쪽을 택하시겠습니까? 가사모가 원하는 것은 둘 다 아닙니다. 가사모는 이목사님의 노고와 업적을 인정하고 명예로운 은퇴를 도모하되 고칠 것은 고치고 새로운 역사를 맞자는 것입니다.

Ken Lee님께서 인용하신 김병구 장로님의 뉴스앤죠이 기고문을 보면 장로님께서 폐해로 지적하는 내용이 마치 가나안교회 상황을 사진으로 찍어 놓은 듯 합니다. (동의하지 못하신다면 그 글을 다시 한 번 읽어보시지요.) 그런데 그런 문제를 담임목사 은퇴 후까지 기다리라는 제안은 전혀 하지 않으셨더군요.

3. 당회에 문서로 공개적으로 제안한 것이 하나님 앞에 회개해야 하는 죄가 되는 일일까요?

위의 질문은 장로님의 명문 “세상적이지 못한 목사님 보다는…”에 쓰신 것입니다. 지나친 아부는 오히려 모독이 될 때가 있습니다. 이 문제는 이목사님께서 공개적으로 사과하셨고 하나님께 회개하셨다고 하기에 언급하지 않는 것이 좋을 듯 하나 장로님께서 지적하신 것이기에 조심스럽게 접근하고자 합니다.

첫째, 회개는 본인과 하나님만 아는 죄에 대해 은밀히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목사님께서 진심으로 회개하셨다는 것을 저는 추호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어떤 이유에서 장로님은 다른 분의 회개를 놓고 회개할 죄인지 아닌지를 묻습니까? 둘째, 인간의 행동이 그 자체로는 가치중립적인 것이 대부분입니다. 즉, 행동의 동기가 그 행동의 가치를 결정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원로목사 청원과 함께 요청하신 내용들은 평소 이목사님께서 보여주신 모습에 비추어 보면 순간적이나마 잘못된 판단의 결과로 나타난 것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점은 이목사님께서도 말씀하셨고, 저도 진실로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이목사님이 회개하셨겠지요. 셋째, 이목사님이 사심 없이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요청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 결과가 오늘과 같은 문제로 나타났다면, 지도자로서 책임을 지는 것이 마땅합니다. 이 또한 이목사님이 회개하신 이유인줄 압니다. 사도바울이 말한 형제를 실족하게 하는 것과 연자 맷돌을 잘 아실테지요.

한 말씀만 더 드리고 맺으려 합니다. 아무리 수려한 문장으로 명문을 쓰시더라도 논리에 일관성이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구약의 선지자처럼 거룩한 사랑으로 질책하시되 기분을 풀어주지 못하는 결점을 지닌 채, 지난 30년 동안을 목회해 오셨습니다. 그런 점에서는 저도 목사님에게 불만이 없지 않습니다”라는 것이 이목사님에 대한 장로님의 유일한 불만이라면 “저는 젊은 집사님들께서 시작한 교회개혁운동에 근본적으로 찬성합니다” 또는 “이목사님께서 영예롭게 은퇴하신 연후에 개혁하는 것이 순서”와 같은 말씀으로 헷갈리게 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그렇게 완벽한 목회를 하신 이목사님이 남겨 놓으신 교회의 어느 구석에서 개혁의 여지를 찾으시려 하십니까? 짧지 않은 글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