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 C교회에서 현재도 시무하고 있다는 R목사는 “너희가 가나안을 아는가?”라는
제목으로 약 $ 500 에 해당하는 전면광고를 지난 주까지 26회를 연제했다고 한다.
대략 $ 13,000 가량의 경비가 들었을 것 같다. 아니, 원래 언론사들은 장기 광고주에게는 할인료 (Discount)를 적용하기 때문에 이보다는 적을 수 있다.
글쎄,,,,
R목사 사비로 전면 광고료를 지불했을까? 아니면 C교회 재정으로 지불했을까?
그야, 재정보고나 정기 재정 감사시에 알 수 있는데,,,,
하여간에 C 교회에서 잘 하고 있겠지요!
아무튼지, “너희가 가나안을 아는가?” 를 문법적으로 풀어보면.
주어는 “너희가”
목적어는 “가나안을”
동사는 “아는가?”이다.
특히, 반어법을 사용하여 너희는 가나안을 모른다를 강조하고 있다.
그러면 “너희가” 누군가가 궁굼한데….
그의 글을 보면 가사모?, 노회 총무?, 유OO목사? , 대회AC 등으로 추측할 수 있는데….
아무래도 비난의 강도나 빈도수를 보더라도 가사모가 유력한 것 같다.
“가나안을”에서 가나안은 직접적으로는 C교회를 말하지만은,
그동안 R목사의 글을 보면 R목사 자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가 추측된다.
“아는가?”는 글을 읽는이들에게 하대하는 어법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것을 경어로 바꾸면 “아세요?” 나 “아쉽니까?”가 된다.
글을 읽는 불확정 다수를 무시하는 것이 보인다.
이런것들은 R목사가 아닌 다음에는 정확하게 답할 수가 없다.
적반하장은 잘못한 놈이 도리어 잘한 사람을 나무랄 경우에 쓰는 말이다.
그런데 R목사의 글을 보면 이 적반하장이란 말이 떠오는다.
지난 주 일간지에 실린 그의 글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고 한다.
[… 가나안 교회 문제에는 정의와 법과 질서 대신 이 때다 하여 가사모 다섯 장로의 청원을 받아 가나안 교회를 위한다는 명분을 앞세웠고 은혜라는 가식을 앞세워 노회에 특별행정위원회 (AC)를 만들어 가나안을 점령한 것이다. 옛날 제국주의적 환상으로. 이로 인해 가나안은 은혜 대신 정치와 정쟁으로 얼룩지게 된 것이다.]
[ … 지난 2008년 12월 8일 복음교회에 있었던 노회시 대회의 특별위원회 (SAC) 11명이 한미노회를 완전히 접수해 버린 것이다. 이제 한미노회는 없어지고 미국사람 11명이 노회인 것이다. 세상에 완전히 정복당했고 신탁 통치가 된 것이다. 이제 중서부 한미노회 노회장은 SAC 의 의장인 Beth Wagner가 노회장인 것이다. 자신의 권력을 지탱하기 위해 노회를 미국인에 팔아버린 것이다. 권력이 무엇인데. ]
R목사는 이글에서 제국주의, 신탁 통치란는 단어를 썼다.
제국주의 뜻은 경제적으로 남의 나라 또는 후진 민족을 정복하여 큰 나라를 건설하려고 하는 침략적 경향이고, 신탁 통치의 뜻은 국제연합의 신탁을 받은 나라가 일정한 영토를 통치하는 일이다. 이것은 독립된 나라에 대한 그 나라의 주권에 관한 문제이다.
한미노회가 설립된 것은 PCUSA의 Book of Order에 규정한 대로 했을 것이고, 한미노회 상위 치리기관인 Lincoln Trails 대회의 허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교단법에 규정한 대로 했다면, 한미노회와 노회에 속한 목사들은 교단법을 잘 준수해야 한다.
교단에서 교단에 속한 개체교회와 노회의 질서를 바로 잡기 위해서 행정전권 위원회를 구성하였을 뿐이다. R목사의 주장대로 한미노회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또 독립된 나라가 침략을 받아 정복당하고 신탁통치를 받는 것도 아니다.
한민족의 한을 글 서두에서 언급했는데, R목사야 말로 한민족 굴욕의 역사적 사실을 인용하여 자신의 억울함을 대변하는 것은 극히 위험한 발상이라 생각된다.
또한 교회 권력을 이야기 한다. 권력은 권력을 지향하고 누리기를 원하는 자만이 추구하는 것이다.
예수님처럼 낮아지기를 원하는 참된 제자들은 봉사하고 헌신하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지, 교회내의 권력에는 관심도 없다.
권력은 ‘남을 다스리거나 복종시키는 힘’인데, 교회에서 누가 누구를 다스린단 말인가?
지금 가나안 사태의 해결에 필요한 것은 당사자 각자가 다른 이의 눈에 들어있는 띠끌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눈속에 들어 있는 들보를 보고 인식하고 기도로서 회계하며,
성경 말씀을 깊이 묵상하여 어떤 길이 주님 보시기에 참된 제자된 길인지를 살펴야할 때라고 생각한다.
끝으로 성경 한 구절을 나누고 자 원합니다.
(15) 저희가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16) 또 두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양을 치라 하시고
(17) 세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
(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19)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요한 복음 21장 15~19절)
모두가 잘 아는 말씀이지만,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베드로에게만 하시지는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양떼를 치는 것이 아닌, 베드로와 같이 주님의 양때를 치는 목자에게 주신 말씀을 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만 접으면 될 것을 자신의 억울함을 세상에 외치는 R목사와 같이 했던 10여년 세월보다는,
주님이 원하시는 아름다운 교회를 만들어 보겠다고 몸부림 치는 형제, 자매와 같이 했던 5년의 세월이 더 의미가 있었고,
주님께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럼, 주안에서 형제, 자매된 여러분 오늘도 주안에서 평안하시기를 바랍니다.
어느 한 교회 목사가 한 제목으로 한 신문사에 매주 전면 광고 형식으로 반년에 가까운 26회 연속 기사화 하였다고 하면 엄청난 사건입니다.
바로 이 신문광고 기사 제목이 “너희가 가나안을 아는가?”입니다.
여기서 “너희가” You는 누구를 지칭하는지 모든 분이 궁금하겠지만. 문장의 흐름으로 보아서 바로
글을 읽고 있는 자신을 말하는 것으로 느낌을 받아 글 내용보다 이런 사람이 다 있어? 하였다고 합니다.
문법상 명령문으로 저속한 상대방을 무시 멸시 정도의 치졸한 용어에 속한다고 하겠지요.
제가 듣는 바에 의하면 시카고 모 한인회장 김씨는 그 R목사에게 직접 전화로 이 용어에 대하여 항의를 하였다 고합니다.
또한 저의 L친구가 Wisconsin소제 한 교회 주일예배에 참석하였더니. 시카고에서 온 줄 알고서 한 노신사(서울대 출신 방문한 모 장로)가 묻는 말이 가나안교회 R목사를 아는가? 어떤 목사인데 독자더러 너희가 라는 막말을 쓰느냐 하였다 고합니다.
최 집사님은 가사모를 지칭하였다고 하지만 저는 You는 독자를 말하는 것으로 느낌이 듭니다.
비록 아무리 가사모가 밉다 고하지만 이런 제목으로 전면광고 반년을 계속 매주 기사화 한다 고하면 과연 그 효과는? 몰게이지(mortgage)와 택스를 내지 못하면서 기도하시는 목사님이 원망과 한을 실은 전면 광고를 계속하신다니? 가슴 아픈 일입니다.
옛날 설교 중에 농부가 소를 3년 길 드리다가 말을 듣지 아니 하면 도살장으로 보낸다는 기악이 저의 가슴을 아프게합니다.
(2) : 너희가 가나안을 아는가? 26회를 저도 읽었습니다.
우리 조국을 한과 원망이 많은 민족으로 "아리랑 영화"를 서두로 시작하면서 한 매친 한 청년이 일본순사를 낫으로 처 주기였다고 하며 결론에 Lake길을 38선으로 교회를 남북으로 갈라놓으니 다시 우리들은 아리랑의 한을 가질 수박에 없다고 하였지만
본래 그 영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아리랑 영화 줄거리
어느 마을에 광인(약간 정신이상} 영진이 아버지와 여동생 영희와 함께 살고 있다. 어느 날 친구 현구가 찾아와서 영진이가 폐인이 된 것을 가슴 아파하면서 어느덧 영희와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한편 그 마을 악덕지주의 청지기인 오기호는 영희에게 연정을 품고 있던 중 마을 잔칫날 사람들이 모두 동리마당에 모여 있는 사이를 틈타서 영희를 겁탈하려 한다.
때마침 현구가 나타나 오기호와 싸우던 중에 영진이 휘두르는 낫에 오기호가 쓰러지고, 피를 본 충격에 영진은 제정신을 되찾으나 이미 살인범이 된 영진은 쇠고랑을 차고 일본순사에게 끌려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이것이 본 여화의 줄거리인데 전혀 방향이 삼천포 글같습니다.